책 읽는 오후

바람의 화원

가을우체국 2008. 8. 28. 09:43

바람의 화원》


                          

   *저자 소개


 이정명 -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천년 후에>, <해바라기>, <마지막 소풍>, <뿌리깊은 나무> 등이 있다.

 

*책 소개


 <뿌리 깊은 나무>로 '한국형 팩션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바 있는 작가 이정명의 2007년 신작. 시대를 풍미한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삶과 예술을 그린 예술소설이면서 그들의 풍속화처럼 조선의 뒷골목을 그대로 드러내는 생생한 풍속소설이다. 전작에 비해 한층 견고해진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소설의 배경은 조선 사회 전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나던 격동의 18세기 후반. 신윤복과 김홍도는 같은 시대의 화가였지만, 그들의 화풍은 극과 극이라 할 만큼 서로 달랐다. 스승과 제자인 동시에 치열한 경쟁자였던 두 화가. 이들은 왕실과 조정을 둘러싼 고위층의 음모에 연루되면서 물러날 수 없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흑과 백으로 상징되는 전통 수묵화와 화려한 채색화의 충돌, 새로운 색을 찾기 위한 장인들의 눈물겨운 고행을 비롯, 육조거리 대장간과 종이공장, 골목길과 우물가의 여인들, 시전거리와 빨래터 등 조선 시대의 미술사적 지식 및 서민들의 삶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두 화가의 작품 34 점이 컬러 도판으로 함께 실려 있다. (알라딘에서 발췌)

 

*그들은 누구인가?


단원 김홍도1745(영조 21)~?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만호를 지낸 진창(震昌)의 손자인 석무의 아들로 태어났다. 화원 집안인 외가로부터 천부적 재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어려서는 경기도 안산에 칩거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강세황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20대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으며, 28세 때인 1773년에는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에서 근무했다. 1777년 별제로 있으면서 강희언·김응환·신한평·이인문 등과 함께 그림제작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1781년에는 한종유·신한평 등과 함께 정조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 도사(圖寫)의 동참화사로 활약하고 그 공으로 경상도 안동 부근 안기역의 찰방을 제수받았다. 이무렵부터 명(明)의 문인화가 이유방의 호를 따라 '단원'이라 자호했다. 1788년에는 김응환과 함께 왕명으로 금강산 등 영동 일대를 기행하고 그곳의 명승지를 수십 장(丈)이나 되는 긴 두루마리에 그려 바쳤다. 1791년에 다시 어용화사로 선발되어 정조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그해 겨울 충청북도 연풍 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 정월까지 봉직했다. 현감 퇴임 후의 만년에는 지방의 권농(勸農)을 지내기도 했는데,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 속에서 여생을 마쳤다. 1810년경을 전후하여 타계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가 및 영향- 홍백화의 글과 조희룡의 〈호산외기 壺山外記〉에 의하면,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도량이 넓고 활달해서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고 한다. 스승인 강세황으로부터는 '신필'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정조는 '회사(繪事)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고 할 만큼 그를 총애했다. 김홍도가 이룩했던 한국적 감각의 화풍과 경향들은 그의 아들인 김양기를 비롯하여 신윤복·김득신·김석신·이명기·이재관·이수민·유운홍·엄치욱·이한철·유숙 등 조선 후기와 말기의 여러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화 발전에 탁월한 발자취를 남겼다. 안견·정선·장승업과 함께 조선시대의 4대 화가로 손꼽힌다. 그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의 화풍을 추종했던 화가들을 가리켜 김홍도파 또는 단원파라 하기도 한다.

 

혜원 신윤복 1758(영조 34)~?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와 함께 풍속화의 쌍벽을 이루었다. 본관은 고령. 자는 입부(笠夫), 호는 혜원(蕙園). 아버지는 화원이었던 한평(漢枰)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단지 도화서(圖畵署)화원으로 벼슬이 첨절제사(僉節制使)까지 이르렀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의 풍속화는 소재의 선택, 구성, 인물의 표현방법 등에서 김홍도의 풍속화와는 현저히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김홍도가 소탈하고 익살맞은 서민생활의 단면을 주로 다룬 데 반해, 그는 한량(閑良)과 기녀(妓女)를 중심으로 한 남녀간의 춘의(春意)를 주로 그렸다. 김홍도와의 차이는 인물 묘사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데, 대체로 얼굴이 갸름하고 눈꼬리가 치켜올라간 형태로 인물을 그리면서 섬세하고 유연한 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적절히 사용했다. 그러나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풍속화를 전개시키는 경우에는 산수에 보이는 석법(石法)이나 준법(?法)·수파묘(水波描) 등에서 간혹 김홍도의 영향이 보이기도 한다. 신윤복의 작품에는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것 이외에도 무속(巫俗)이나 주막의 정경 등 서민사회의 풍모를 보여주는 순수한 풍속화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으며, 산수화는 담묵(淡墨)과 담채(淡彩)를 주로 사용해 참신한 감각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등 조선 말기 이색화풍의 대두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윤제홍의 화풍과 유사하다. 신윤복은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찬문(贊文)을 쓰고 자신의 관지(款識)와 도인(圖印)을 덧붙이고 있는데, 유교적 도덕관념이 강했던 시기에 속된 그림을 자기의 작품이라고 떳떳이 밝히는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그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의 화풍은 후대의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쳐 작가 미상의 풍속화나 민화 등에서 그의 화풍을 따른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대표작으로는 〈연당야유도 蓮塘野遊圖〉·〈미인도 美人圖〉·〈단오도 端午圖〉·〈무무도 巫舞圖〉·〈산궁수진 山窮水盡〉·〈선유도 船遊圖〉·〈산수도 山水圖〉 등이 있다.
                                                                                                       - 이상 백과사전에서 발췌

 

*책 속으로 GO! GO!

 

천재화가 김홍도, 신윤복, 그리고 동생을 위해 대신 죄를 뒤집어 쓰고 단청실로 가 윤복을 위해 색을 만드는 형 영복, 윤복이 마음에 둔 기생 정향, 정향과 윤복을 곁에 두고 싶어했던 신분을 살 정도의 최고의 장사꾼 김조년, 이들의 이야기와  십년 전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장헌세자의(사도세자) 어진을 그리다가 살해당한 강수항과, 강수항을 살해한 이를 그리던 서징마저 살해당하지만  사건은 조용히 덮어진다. 정조는 이를 밝히고 사도세자의 어진을 찾아 보라고 명하는데....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설키어 흥미롭게 전개된다. 

 

홍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윤복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
문득 얼굴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그립고, 산 그림을 보면 그 산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형태가 아니라 혼을, 모양이 아니라 내면을, 양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알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알아버린다면 아름다움도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인간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뛰어오르려 하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몸을 던지려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곳에 손이 닿고, 그 강을 건너고, 그것을 가진다면 가슴속에 들끓던 불덩이는 곧 재가 되고 말겠지요." - 윤복

 

 "흥미롭구나. 누추한 주막의 궁핍한 자들은 모두 웃는 얼굴인데, 호사스런 술자리의 양반들이 모두 찡그린 표정이 아니냐?"
주상이 윤복의 그림을 보며 말했다. 윤복은 조아린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화원이 그리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 아니올지요. 그림 속에 그려진 것은 화원이 본 것이 아니라 대상의 형태를 빌어 표현된 화원 자신의 꿈과 욕망과 희노애락일 것입니다."
"공의로운 그림에 어찌 사사로운 화원의 개인적인 감정을 티끌만큼이라도 내보일 수 있단 말이냐?"
"다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 하는 것은 잔재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화원들은 모사에 충실하지 않았느냐."
"아무리 똑같이 베껴도 그것은 화원의 머릿속에 인식된 대상일 뿐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화원들이 모사한 도화서양식 또한 화원들의 머릿속에 있는 허상을 양식과 기법을 통해 그린 것뿐입니다."
"그러면 이 양반들의 표정에 네 감정과 생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스승의 그림 속 인물들의 웃음은 그린 자가 그들을 한없이 사랑스럽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양반들의 찡그린 얼굴은 그린 자가 그들을 편치 않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주상과 윤복의 대화 중에서

 

"여백은 무위를 가치로 하는 노장의 가르침이나 참선을 통해 깨닫는 불가의 무념무상과도 두루 통한다.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깨닫지 않음으로써 깨닫는 것이지. 정념을 억누르고 중용의 도를 구현하는 선비들의 구도적 지향 또한 마찬가지다. 덕지덕지 울긋불긋 색으로 도배한 그림이 어찌 단순고졸한 경지를 따르겠느냐?" -단청실의 노인이 영복에게 한 말 중에서

 

"도화서 양식은 색을 사용한다고 하나 온 화면에 황색을 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누른 색이 세상의 중앙을 뜻한다 하나 세상이 어찌 황금색일 수만 있습니까?"-영복

 

바람의 화원이었다. 바람처럼 소리 없고, 바람처럼 서늘하며, 바람처럼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찾아 떠나는 그 길을 차마 나는 나설 수 없었다. 그녀는 바람이었고 나는 그녀가 흔들고 간 가지였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혼자 흔들리며 몸을 떨었다. 만약 나라는 가지에서 꽃이 핀다면 그것은 그녀가 피운 꽃이고, 열매가 열린다면 그 또한 그녀가 열리게 한 것일 터이다. 한때의 나는 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빛은 스러지고 뜨거움은 식었다. 빛을 잃고 뜨거움을 상실한 별은 별이 아닐 것이다. 별은 빛나기 위해 존재 하니까...... 하지만 그녀는 벼락이었다. 벼락은 사려져도 여전히 벼락이다. 한 순간의 섬광을 뿜어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만 그 빛을 본 자는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함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홍도의 독백 중에서

 

* 토론제기
*이 책에 대해서 말하기(솔직하고도 거침없는 발언 환영함)

*욕망과 예술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팩트와 픽션의 경계에서)

*맨토와 맨티의 관계의 재구성에 대해(아주 관계없는 이야기는 아닐진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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